이름은 무섭지만 정작 먹는 건 '바다의 눈'
여러분, '흡혈오징어'라는 이름만 들으면 피에 굶주린 무시무시한 괴물이 떠오르시죠. 그런데 이 생물은 오징어도 아니고, 피를 빨지도 않아요. 붉은 눈과 검은 망토 같은 몸 때문에 붙은 이름일 뿐, 실제로는 바다 눈, 즉 가라앉는 유기물 찌꺼기를 먹고 사는 아주 온순한 심해 생물입니다. 게다가 이 생물은 산소가 거의 없는 바다에서 살아가는 비밀 병기를 가지고 있는데요. 오늘은 수억 년 전 모습을 간직한 채 살아남은 '살아있는 화석', 흡혈오징어의 세계를 함께 알아볼게요.
오징어도 문어도 아닌 제3의 존재
흡혈오징어의 학명은 '밤피로테우티스 인페르날리스(Vampyroteuthis infernalis)'인데, 직역하면 '지옥에서 온 흡혈 오징어'라는 뜻이에요.
이름은 그렇지만, 실제 분류학적으로는 오징어와 문어의 중간쯤에 위치한 독립된 목(目)에 속하는 유일한 생존 종입니다.
미국 몬터레이베이 수족관연구소(MBARI)에 따르면, 흡혈오징어가 속한 무리는 약 1억 6천만 년 전 쥐라기 시대부터 이어져 온 매우 오래된 계통이에요.
오징어와 문어의 공통 조상에 가까운 형질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어서, 과학자들은 이 생물을 두족류의 진화를 이해하는 '살아있는 화석'으로 여기고 있어요.
몸길이는 최대 30센티미터 정도로 크지 않아요.
특징적인 것은 팔 사이에 연결된 망토 같은 막과, 몸 양쪽에 달린 귀 모양의 작은 지느러미예요.
이 지느러미를 퍼덕이며 물속을 날아다니듯 헤엄치는 모습은 마치 우아한 나비 같아요.
흡혈오징어는 팔이 여덟 개인데, 오징어나 문어와 달리 팔 끝까지 이어진 막으로 연결돼 있어요. 팔을 뒤집어 머리 위로 씌우면 우산처럼 몸 전체를 감싸는 독특한 자세를 취할 수도 있습니다.

[어두운 심해에서 붉은 몸과 푸른 눈으로 유영하는 흡혈오징어 "vampire squid deep sea Vampyroteuthis" / "흡혈오징어 심해"]
산소가 거의 없는 곳에서 숨 쉬는 비결
흡혈오징어가 가장 놀라운 점은 서식지예요.
이들은 수심 600~1,200미터 사이의 '산소 최소층(oxygen minimum zone)'에 서식해요.
이곳은 바닷물 속 산소 농도가 표층의 5퍼센트 이하로 떨어지는 지역으로, 대부분의 해양 생물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에요.
앞서 살펴본 SOFAR 채널이 형성되는 깊이와도 겹치는 구간이죠.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흡혈오징어의 혈액에 있는 독특한 산소 운반 단백질과 극도로 낮은 신진대사율에 있어요.
몬터레이베이 수족관연구소 연구팀에 따르면, 흡혈오징어의 혈액 속 헤모시아닌은 산소가 매우 적은 환경에서도 산소를 효율적으로 붙잡아 운반할 수 있도록 특화돼 있어요.
또한 신진대사율이 알려진 두족류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 몸이 거의 에너지를 쓰지 않는 상태로 살아간다고 해요.
이 덕분에 흡혈오징어는 포식자가 많은 산소 풍부한 층을 피하고, 산소가 부족해서 포식자가 거의 접근하지 못하는 안전지대에서 유유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먹물 대신 빛나는 점액을 쏘는 방어술
흡혈오징어의 방어 방식도 특이해요.
대부분의 오징어와 문어는 위협을 받으면 검은 먹물을 뿜지만, 어두운 심해에서는 먹물이 큰 효과가 없어요.
그래서 흡혈오징어는 팔 끝에서 푸른빛을 내는 끈적한 점액 구름을 내뿜는데, 이 점액이 포식자의 눈앞에서 몇 분 동안 빛나면서 시선을 분산시키고, 그 사이 흡혈오징어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요.
위협이 극단적일 때는 팔을 뒤집어 몸 위로 씌우는 '파인애플 자세'를 취해요.
이 자세에서는 팔 안쪽에 있는 뾰족한 돌기들이 겉으로 드러나서 가시 달린 공처럼 보이는데, 이 모습이 포식자를 당황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마무리하며, 여러분은 흡혈오징어를 어떻게 보게 되셨나요
오늘은 이름과 달리 온순하고, 1억 6천만 년 전 모습을 간직한 채 산소가 거의 없는 바다에서 살아가는 흡혈오징어의 세계를 알아봤어요.
빛나는 점액으로 위기를 넘기고, 에너지를 거의 쓰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남았다는 점이 정말 놀랍지 않으신가요.
무서운 이름 뒤에 이렇게 우아하고 효율적인 생존 전략이 숨어 있다는 게 참 반전이네요.
여러분은 흡혈오징어에 대해 오늘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으신가요.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참고 및 원본 출처 (Reference List)
몬터레이베이 수족관연구소(MBARI), 흡혈오징어 생태 및 산소 최소층 적응 연구
두족류 진화 계통 관련 해양생물학 연구 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