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까지 들리는 고래의 목소리
여러분, 한쪽 바다에서 낸 소리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지구 반대편 바다에서도 들릴 수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앞서 살펴봤듯 고래와 돌고래는 소리로 소통하는데, 사실 바닷속에는 이런 장거리 소통을 가능하게 만드는 특별한 '음파 고속도로'가 존재합니다. 이 길의 이름은 'SOFAR 채널'인데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군이 조난당한 조종사를 구하려는 목적으로 처음 활용하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오늘은 바닷속을 가로지르는 이 신비로운 음파의 길을 함께 알아볼게요.
소리가 갇혀서 멀리 가는 이유
SOFAR는 'Sound Fixing And Ranging'의 약자로, 수심 약 600~1,200미터 사이에 형성된 독특한 층을 말해요.
원리를 이해하려면, 먼저 물속에서 소리의 속도가 무엇에 따라 달라지는지 알아야 해요.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소리는 물의 온도가 높을수록, 그리고 수압이 높을수록 빠르게 전달되는 성질이 있다고 해요.
그런데 바다에서는 이 두 가지 조건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독특한 상황이 만들어져요.
수면 근처는 햇빛으로 데워져 수온이 높아서 소리가 비교적 빠르게 전달되지만, 수심이 깊어질수록 수온은 급격히 떨어지면서 소리의 속도도 점점 느려집니다.
그러다 어느 깊이를 지나면 수온 하락은 거의 멈추고 대신 수압이 계속 증가하면서, 이번에는 소리의 속도가 다시 빨라지기 시작해요.
결국 수심 약 1,000미터 부근에서 소리의 속도가 가장 느려지는 최저점이 만들어지는데, 이 층이 바로 SOFAR 채널이에요.
소리는 느린 쪽으로 휘어지는 성질이 있어서, 이 층에서 발생한 소리는 위나 아래로 퍼져나가려고 해도 자연스럽게 다시 이 층 쪽으로 굴절돼 돌아옵니다.
마치 소리가 투명한 관 속에 갇힌 것처럼, 층 안에서 반복적으로 휘어지며 손실 없이 아주 멀리까지 이동하게 되는 거죠.
이 원리는 빛이 광섬유 케이블 안에서 계속 반사되며 멀리까지 전달되는 것과 비슷해요. SOFAR 채널은 말하자면 바다가 자연적으로 만든 거대한 음파 광섬유인 셈입니다.

"SOFAR channel sound speed profile ocean" / "SOFAR 채널 음속 수심"
2차대전 조종사를 구하기 위해 시작된 발견
SOFAR 채널의 존재는 1940년대 초, 두 명의 과학자가 독립적으로 발견했어요.
미국의 모리스 이윙(Maurice Ewing)과 소련의 레오니드 브레호프스키흐(Leonid Brekhovskikh)가 각각 이 현상을 처음 이론적으로 예측하고 실험으로 확인했다고 우즈홀해양연구소(Woods Hole Oceanographic Institution)는 설명하고 있어요.
특히 이윙 박사 연구팀은 이 원리를 군사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안했어요.
바다에 불시착한 조종사가 SOFAR 채널 깊이에 작은 폭발물을 투하하면, 이 폭발음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여러 수중 청음 기지에 도달하고, 각 기지에 소리가 도착한 시간 차이를 계산해서 조난 위치를 삼각측량으로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다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구조 시스템에서 'SOFAR'라는 이름이 유래했어요.
이 기술은 이후 냉전 시기 잠수함을 탐지하는 수중 음향 감시 시스템으로 발전했고, 오늘날에도 해양 지진 감지나 국제 핵실험 금지 감시 같은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고래들은 이 길을 알고 있을까
SOFAR 채널의 존재는 앞서 살펴봤던 고래의 소통 방식과도 흥미로운 연결고리를 만들어요.
대왕고래와 참고래 같은 대형 수염고래류는 매우 낮은 주파수의 울음소리를 내는데, 이 저주파음은 SOFAR 채널을 타고 놀랍도록 멀리까지 전달될 수 있어요.
미국 코넬대학교 해양생물음향연구소(Bioacoustics Research Program)의 연구자들은, 과거 인간 활동으로 인한 소음이 적었던 시기에는 이런 고래의 울음소리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개체들에게까지 닿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어요.
다만 이런 장거리 소통이 실제로 고래들 사이에서 의도적으로 이뤄졌는지, 아니면 우연히 멀리 퍼져나간 것인지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주제예요.
앞서 다뤘던 해양 소음 공해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선박 소음이 이 '음파 고속도로'를 어지럽히고 있다는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여러분은 이 음파의 길을 어떻게 느끼셨나요
오늘은 수온과 수압이라는 두 가지 물리적 조건이 만들어낸 바닷속 보이지 않는 음파 고속도로, SOFAR 채널에 대해 알아봤어요.
수천 킬로미터를 손실 없이 달리는 소리가 조난 조종사를 구하고 잠수함을 추적하는 데 쓰였다는 사실이 정말 흥미롭지 않으신가요.
우리가 볼 수 없는 바닷속 깊은 곳에, 이렇게 거대한 자연의 통신망이 숨어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비롭게 느껴지네요.
여러분은 SOFAR 채널에 대해 오늘 처음 들어보셨나요.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참고 및 원본 출처 (Reference List)
미 국립해양대기청(NOAA), 수중 음파 전파 및 음속 구조 관련 공식 자료
우즈홀해양연구소(Woods Hole Oceanographic Institution), SOFAR 채널 발견 및 군사 활용 역사 자료
코넬대학교 해양생물음향연구소(Bioacoustics Research Program), 고래 저주파음 장거리 전파 연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