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인데 광합성을 한다고요
여러분, 식물처럼 햇빛만 쬐면 살아갈 수 있는 동물이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동물은 먹이를 먹어야 하고, 광합성은 식물과 조류의 일이라고 배웠잖아요. 그런데 미국 동부 해안의 염습지에는 이 상식을 깨는 작은 바다 민달팽이가 살고 있어요. 몸이 초록빛 이파리처럼 생긴 이 생물은, 먹이로 삼은 조류의 광합성 장치를 몸속에 훔쳐서 쓰고 있습니다. 오늘은 '태양광으로 움직이는 민달팽이'로 불리는 엘리시아 클로로티카의 신기한 생존법을 함께 알아볼게요.
먹은 조류의 엽록체를 몸속에 간직하다
이 민달팽이의 정식 이름은 '엘리시아 클로로티카(Elysia chlorotica)', 흔히 '동부 에메랄드 엘리시아'라고 불려요.
몸길이는 2~3센티미터 정도로 작고, 납작하게 퍼진 몸이 나뭇잎을 꼭 닮았습니다.
이 민달팽이는 '바우케리아(Vaucheria)'라는 사상체 조류를 먹고 살아요.
그런데 조류를 소화하는 과정에서 특이한 일이 벌어집니다.
조류 세포 안에 있던 엽록체, 즉 광합성을 담당하는 기관을 분해하지 않고 소화관 세포 안에 그대로 옮겨 저장하는 거예요.
이렇게 다른 생물의 엽록체를 훔쳐서 자기 세포 안에 보관하는 현상을 '클렙토플라스티(kleptoplasty)', 우리말로는 '엽록체 절취'라고 불러요.
훔친 엽록체는 민달팽이의 몸속에서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계속하고, 그 결과 만들어진 영양분을 민달팽이가 나눠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린 민달팽이는 처음 몇 주 동안은 조류를 열심히 먹으며 엽록체를 확보하고, 그 뒤로는 거의 먹지 않고 햇빛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모습이 관찰됐어요.

[📸 추천 이미지]
① 설명: 초록빛 나뭇잎처럼 몸을 펼친 엘리시아 클로로티카의 모습
② 추천 검색어: "Elysia chlorotica solar powered sea slug green" / "엘리시아 클로로티카 광합성 민달팽이"
먹지 않고도 수개월을 버티는 비결
이 생물이 학계에서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엽록체를 한 번 확보한 뒤에는 먹이를 거의 먹지 않고도 오랜 기간 살아간다는 점이에요.
미국 사우스플로리다대학교 시드니 피어스(Sidney Pierce) 연구팀 등의 연구에 따르면, 이 민달팽이는 엽록체를 확보한 뒤 먹이 없이도 수개월 동안 살아갈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어요.
수명이 대략 1년 남짓한 이 생물에게는 생애 대부분을 햇빛에 의존해서 보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일반적으로 엽록체는 식물이나 조류 세포 안에서 그 세포의 유전자와 단백질의 도움을 받아야 오래 기능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 민달팽이 몸속의 엽록체는 원래 주인인 조류 세포를 떠났는데도 수개월 동안 광합성을 이어가요.
이 부분이 과학자들에게는 큰 수수께끼였고, 지금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주제입니다.
유전자를 훔쳤다는 가설과 그 논쟁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한때 아주 흥미로운 가설이 제기됐어요.
2008년 미국 과학원 회보(PNAS)에 실린 연구는, 이 민달팽이의 유전체 안에서 원래는 조류가 가지고 있는 엽록체 관련 유전자가 발견됐다고 보고했어요.
조류의 유전자가 민달팽이의 DNA로 옮겨와서, 엽록체 유지에 필요한 단백질을 민달팽이가 직접 만들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해석이었습니다.
이는 동물이 다른 종의 유전자를 받아들여 쓰는 '수평 유전자 이동'의 놀라운 사례로 큰 화제가 됐어요.
하지만 이 가설은 이후 논쟁의 대상이 됐어요. 후속 유전체 분석 연구들에서는 같은 결과가 재현되지 않았고, 일부 연구팀은 유전자 이동의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반박했습니다. 현재 학계에서는 이 민달팽이가 어떻게 엽록체를 오래 유지하는지에 대해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로 보고 있어요.
과학자들은 엽록체 자체의 안정성, 민달팽이 세포 안의 보호 메커니즘, 빛 스트레스 대응 능력 같은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함께 연구하고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여러분은 이 민달팽이를 어떻게 보게 되셨나요
오늘은 조류의 엽록체를 훔쳐서 햇빛으로 살아가는 바다 민달팽이, 엘리시아 클로로티카의 이야기를 알아봤어요.
동물과 식물의 경계를 흐리는 이 생물이, 어떻게 엽록체를 오래 유지하는지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라는 점이 더욱 흥미롭지 않으신가요.
바다에는 이렇게 생명의 기본 규칙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은 존재들이 아직도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은 동물이 광합성을 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참고 및 원본 출처 (Reference List)
사우스플로리다대학교(University of South Florida) 시드니 피어스 연구팀, 엘리시아 클로로티카 엽록체 유지 연구
미국 과학원 회보(PNAS, 2008), 엘리시아 클로로티카 조류 유전자 관련 연구
엘리시아 클로로티카 후속 유전체 분석 및 수평 유전자 이동 논쟁 관련 연구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