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자라는 얼음 기둥이 바다 바닥까지 닿는다
여러분, 바닷속에서 얼음 고드름이 아래로 자라나 불가사리와 성게를 얼려버리는 장면을 본 적 있으신가요. 2011년 BBC 다큐멘터리 '프로즌 플래닛'에 등장한 이 장면은 방영 당시 전 세계 사람들을 놀라게 했어요. 학계에서 '브리니클(brinicle)', 별명으로는 '죽음의 손가락'이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바닷물이 어는 과정의 물리가 만들어낸 신비로운 구조입니다. 오늘은 남극 얼음 아래에서 자라나는 이 얼음 기둥의 원리를 함께 알아볼게요.
얼음에서 쫓겨난 소금물이 만드는 기둥
브리니클의 비밀은 바닷물이 어는 방식에 있어요.
민물이 얼면 단단한 덩어리가 되지만, 바닷물이 얼 때는 조금 달라요.
영국 오픈대학교 극지 해양학자 마크 브랜던에 따르면, 바닷물이 얼어서 생긴 얼음은 고체 덩어리보다 바닷물을 머금은 스펀지에 가깝고, 그 안에 아주 작은 소금물 통로가 그물처럼 퍼져 있어요.
겨울에는 얼음 위 공기가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지지만 바닷물은 영하 1.9도 정도에 머물러서, 바다의 열이 차가운 공기로 빠져나가며 얼음 아래쪽에서 새 얼음이 계속 만들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얼음 결정은 소금을 밀어내고, 쫓겨난 소금이 통로에 모여 매우 차갑고 짠 소금물, 즉 '브라인(brine)'이 됩니다.
이 브라인은 주변 바닷물보다 훨씬 무거워요.
차갑고 짠 브라인이 얼음 아래로 빠져나가며 아래로 가라앉을 때, 접촉하는 비교적 덜 짠 바닷물을 얼려서 브라인 주변에 얼음 관을 만들고, 이 관이 자라 브리니클이 됩니다.
쉽게 비유하면, 얼음 속에서 흘러나온 차가운 소금물 줄기가 자기 주변을 스스로 얼려서 투명한 빨대를 만들며 내려가는 거예요.
브리니클이 자라는 원리는 앞서 살펴본 해양 대순환처럼 '차갑고 짠 물은 무겁다'는 단순한 밀도의 법칙에서 출발해요.

[📸 추천 이미지]
① 설명: 남극 해빙 아래에서 아래로 자라는 얼음 기둥 브리니클
② 추천 검색어: "brinicle ice finger of death Antarctica" / "브리니클 죽음의 손가락 남극"
5~6시간 만에 해저까지, 처음 카메라에 담기다
이 현상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 자라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기는 매우 어려웠어요.
브리니클은 1960년대에 처음 발견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남극 현장 관측은 1970년대부터 보고돼 왔어요.
하지만 해빙 아래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 촬영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2011년, BBC 촬영팀의 휴 밀러와 더그 앤더슨이 마침내 브리니클이 자라는 모습을 처음으로 촬영했어요.
촬영 장소는 남극 로스해 근처 리틀 레이저백 섬 얼음 아래로, 수온이 영하 2도 정도였고 장비가 무거워서 접근이 쉽지 않았다고 해요.
밀러는 일주일 전 본 브리니클이 눈앞에서 길어지는 걸 확인했고, 전체 성장에는 5~6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이 얼음 기둥이 해저에 닿으면 바닥에 얼음 그물이 퍼지면서 닿는 모든 것을 얼려버리고, 그 안에는 성게와 불가사리 같은 해저 생물도 포함돼요.
다만 이 현상은 모든 바다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에요.
극지방의 떠 있는 해빙 아래라는 특정한 조건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유리로 만든 선인장처럼 섬세한 구조
브리니클은 위협적인 별명과 달리 매우 연약한 구조물이에요.
직접 본 적 있는 오리건주립대 앤드루 서버(Andrew Thurber) 교수는 브리니클을 유리로 불어 만든 거꾸로 선 선인장 같다고 묘사했고, 아주 살짝만 닿아도 부러질 만큼 섬세하다고 말했어요.
리틀 레이저백 섬 얼음 아래에서는 수천 개의 브리니클이 관찰됐다고 해요.
연구자들은 이 현상을 실험실에서도 재현하고 있어요.
스페인 연구팀은 차가운 브라인을 주입해 브리니클을 만드는 실험으로, 지구와 다른 천체에서 이런 구조가 생길 수 있는 조건을 연구했고, 브리니클이 해빙의 에너지 수지에도 중요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생명의 기원과도 닿아 있을까
브리니클이 과학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어요.
브리니클의 형성 방식이, 지구 생명의 요람으로 가설이 제기돼 온 열수구와 비슷하다는 점이에요.
앞서 살펴본 심해 열수구는 뜨거운 물이 솟아오르며 광물 기둥을 위로 키우는데, 브리니클은 차가운 소금물이 아래로 얼음 기둥을 키운다는 점에서 거울상 같은 구조예요.
연구를 이끈 브루노 에스크리바노는 얼음 관 안쪽의 구획에 화학물질이 고농도로 모일 수 있고, 지방질이 안쪽을 덮어 원시 세포막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어서, 브리니클도 생명 기원에 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어요.
관 안의 산성과 염기성 성분이 더 복잡한 분자를 만드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제공할 수 있고, 심지어 DNA까지 가능할지 모른다는 가설이에요.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가설 단계의 이야기로, 확정된 사실은 아닙니다.
마무리하며,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느끼셨나요
오늘은 얼음에서 쫓겨난 차가운 소금물이 스스로 얼음 관을 만들며 내려가는 브리니클의 원리를 알아봤어요.
밀도 차이라는 단순한 물리 법칙 하나가, 바다 밑까지 자라는 유리 같은 얼음 기둥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하지 않으신가요.
이 작은 구조가 생명의 기원에 대한 힌트까지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극지 바다를 더 궁금하게 만드네요.
여러분은 바다에서 이런 얼음 현상을 알고 계셨나요.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 카테고리: 바다에서 시작된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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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및 원본 출처 (Reference List)
BBC Nature·Frozen Planet 촬영팀, 브리니클 최초 촬영 관련 보도(2011)
오픈대학교(Open University) 마크 브랜던 박사, 해빙과 브라인 형성 원리 설명
Testón-Martínez 외, The Cryosphere 논문 프리프린트, 브리니클 실험실 재현 연구(2023)
Big Think, 브리니클과 생명 기원 가설 관련 기사
Earth Archives, 브리니클 형성 과정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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