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무섭지만 사실은 고도로 사회적인 동물
여러분, 범고래를 영어로 ’킬러 웨일(killer whale)’이라고 부르는 이유 아시나요. 사실 이 이름은 옛날 뱃사람들이 범고래가 다른 큰 고래를 사냥하는 모습을 보고 붙인 별명에서 유래했어요. 그런데 정작 범고래가 사람을 공격한 야생 사례는 극히 드물고, 오히려 이 동물의 진짜 정체성은 ‘고도로 조직화된 사회’에 가깝습니다. 심지어 범고래는 고래도 아니고 사실은 돌고래과에서 몸집이 가장 큰 종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오늘은 이름값과는 다른 범고래의 진짜 모습을 함께 알아볼게요.
할머니가 이끄는 모계 사회
범고래 사회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바로 조직 구조예요.
범고래는 ’모계 혈통 무리(matriline)’라는 독특한 사회 구조를 이루고 살아요. 가장 나이 많은 암컷을 중심으로, 그 자식들과 손주들까지 여러 세대가 함께 무리를 이루며 평생을 함께 지냅니다. 수컷도 성체가 되어 독립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어미가 이끄는 무리에 남아있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흥미로운 건 폐경 이후 암컷의 역할이에요. 미국 워싱턴대학교와 영국 엑서터대학교 공동 연구팀에 따르면, 범고래는 사람과 향고래 등 극소수 동물만 가진 ‘폐경(menopause)’ 현상을 겪는데, 폐경 이후에도 수십 년을 더 살면서 무리 전체를 이끄는 리더 역할을 한다고 해요. 이 나이 든 암컷들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먹이가 부족한 시기에 어디로 가야 할지 무리를 이끌고, 특히 자신의 아들이 굶주릴 때 먹이를 나눠주며 생존을 돕는 모습이 관찰됐습니다.
이 연구팀은 범고래가 이렇게 폐경 이후에도 오래 사는 이유를, 번식 대신 이미 태어난 자손과 손주들의 생존을 돕는 데 진화적 자원을 집중한 결과로 설명하고 있어요.
범고래 무리마다 사냥법과 먹이 선호, 심지어 서로 다른 방언에 가까운 울음소리 패턴을 가지고 있어서, 과학자들은 이를 일종의 ‘문화’로 해석하기도 해요.

지역마다 완전히 다른 사냥법, 대물림되는 전통
범고래는 지구상 거의 모든 바다에 서식하지만, 지역과 무리에 따라 사냥법과 식성이 놀라울 정도로 다양해요.
노르웨이 인근 바다의 범고래 무리는 청어 떼를 커다란 원형으로 몰아넣은 뒤, 강력한 꼬리로 물을 내리쳐 기절시켜서 잡아먹는 ‘캐러셀 사냥법’을 구사해요. 반면 남극 인근에 사는 일부 범고래 무리는 얼음판 위에 쉬고 있는 물개를 사냥하기 위해, 여러 마리가 동시에 파도를 만들어 물개를 물속으로 떨어뜨리는 협동 전략을 씁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이런 사냥 기술은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게 아니라 어미와 무리 구성원으로부터 학습을 통해 세대를 거쳐 전수되는 문화적 전통에 가깝다고 설명해요. 그래서 같은 종이라도 어느 지역, 어느 무리에서 자랐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먹이와 사냥법을 갖게 됩니다.
특히 최근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인근 해역에서 범고래 무리가 요트의 방향타를 집중적으로 들이받아 파손시키는 독특한 행동이 보고되면서, 이 행동이 학습된 새로운 문화적 유행인지 여부를 두고 해양생물학자들 사이에서 활발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다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의 무게
범고래는 먹이사슬의 정점에 위치한 최상위 포식자예요.
무리에 따라 물고기, 물개, 상어는 물론 대형 고래까지 사냥하는 경우도 있어서, 사실상 천적이 없는 존재로 꼽혀요. 이런 위치 때문에 범고래 개체수와 건강 상태는 해당 지역 해양 생태계 전체의 균형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다만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따르면, 일부 지역 범고래 개체군은 먹이 감소, 수중 소음, 그리고 몸속에 축적되는 화학 오염물질로 인해 개체수 감소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해요. 특히 지방층에 축적되는 잔류성 유기오염물질은 먹이사슬 최상위에 있는 범고래에게 가장 높은 농도로 농축되는 경향이 있어, 번식 성공률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여러분은 범고래의 어떤 모습이 가장 인상 깊으셨나요
오늘은 무서운 이름과 달리 할머니가 무리를 이끄는 고도로 사회적인 동물, 범고래의 진짜 모습을 알아봤어요. 폐경 이후에도 자손을 돌보며 수십 년을 더 사는 모습, 그리고 지역마다 다른 사냥법을 대물림하는 문화적 전통까지, 정말 놀랍지 않으신가요. ‘킬러 웨일’이라는 이름 뒤에 이렇게 따뜻한 가족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게 새삼 인상 깊게 느껴지네요.
여러분은 범고래에 대해 어떤 오해를 갖고 계셨나요.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참고 및 원본 출처 (Reference List)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 & 엑서터대학교(University of Exeter), 범고래 폐경 및 모계 사회 공동 연구
미 국립해양대기청(NOAA), 범고래 사냥 문화 및 생태 관련 공식 자료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범고래 개체군 및 오염물질 축적 관련 보고서
